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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공부

한 여름 서울숲 라이딩

by 밝지 2014.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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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몸의 열기로 인해 앓았다. 남은 것은 여름 휴가를 푸지게 다녀온 듯한 피부 색과 아직도 가시지 않은 옅은 두통. 그래도 역시 끝까지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손 놓았던 중국어 공부도 어제부터 다시 시작했고,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되었으니까.


1. 한여름의 라이딩 

뭐, 별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네 시간이나 탈 줄 몰랐던 라이딩이 열병(?)의 시작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전날 들은 비보 때문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면,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부터 잘 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냥 믿고 싶었던 것 같다. 나를 염려하는 이들의 기대와 소망을 마치 예정된 미래 마냥.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실증적이지 않은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면서 확률과 기적에 기대다니. 이럴 때마다 "나는 긍정의 배신을 믿어." 하고 당당히 말하던 노력파 지인이 생각난다. 긍정의 배신은 믿지만 노력은 말로만 하는 나와는 달라도 많이 다르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도 결과를 좌우할 수는 없다는 것. 기준 점수가 있는 시험과는 달라 내 노력의 결과를 스스로 평가할 수도, 예측 할 수도 없다는 것. 구직자들을 무너지게 하는 건 이 두가지 속성이 아닐까 늘 생각했다. 비보를 들은 이에게, 또 스스로에게 "운 띠가 맞지 않았나봐. 더 잘 맞는 지원자가 있었나보지. 너한테도 더 잘 맞는 곳이 있을거야." 하고 위로하던 것도 바로 나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내 미래의 선택권을 그들에게 쥐어준 것이. 정확히 말하면, 내 삶의 주도권이 결정권을 가진 그 누군가와 한낱 운에 있다고 생각한 스스로에게 화가 난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지금의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스스로의 생동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자전거 핸들을 잡게 된 것이다.

 

 

2. 의외의 발견

요즘 자전거 도로 참 잘되어 있더라. 11시 반에 나왔으니 12시 반에는 집에 도착하게 타다 와야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나온지라 선크림은 커녕 반팔 반바지에 모자만 눌러썼는데… 생동감에 취해(?) 페달을 밟다보니 꽤 온 것 같더라. 지도를 확인하니 벌써 광진구. '자전거 타고 갈 수 있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던 서울숲까지 벌써 3분의 2를 온 것이다. (혼자 유럽 여행을 다녀온 뒤로 중간 중간 지도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원래도 길 찾기 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이제는 지도만 있다면 어디에 떨어져도 집까지 잘 찾아올 수 있을 것 같다.) 3시에 예약된 엄마 병원 방문에 동행할 예정이었던지라 돌아갈까? 생각했다. 마음 한 켠에서 성취에 대한 욕구가 스믈스믈 피어 올랐다. 나같이 금방 싫증내는 애가 또 언제 자전거를 타고 여기까지 올 지 모른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햇살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지만, 그나마 눌러쓰고 나온 모자에 얼굴만 살리면 되 하는 생각도… 결국 서울숲까지 가보기로 하고 페달 밟기에 박차를 가했다. (엄마 병원 예약은 아빠가 동행해주기로 했다는 후문)

지도를 보지 않고 그렇게 신나게 몇 분을 달렸다. 출근 길에 본 듯한 다리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한강에 다 다랐다는 직감에 지도를 보니… 서울숲을 지나쳐 왔다. 북방 민족인 내가 자전거를 타고 한강까지 온 것 자체가 사실 처음이라, 일단 자축을 먼저 했다. '내가 과연 가능할까…?' 했던 일을 실제 이뤄냈을 때의 짜릿함은 언제나 달콤하다. 자전거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이 느낌! 이 느낌 때문에 세상에는 그렇게 많은 자덕(?)들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자축은 이만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본디 목표였던 서울숲을 가보지 않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래서 왔다. 서울숲으로 이어지는 길은 참 요상했지만, 닌자 거북이가 나올 것 같은 지하도를 지나니 이런 꽃 사슴이…! 사진을 통해 서울숲에 사슴이 산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싶다.

딱히 사람을 반기지도, 피하지도 않는 꽃사슴들이 그렇게 널부러져 각자의 일상을 즐긴다. 평일 낮이면 그렇게 앉아 사색에 잠기는 게 아마도 사슴의 일상일 것이다. 한 낮의 공원은 평화롭다는 단어가 참 잘어울린다. 유일한 소음은 체험학습을 나온 꼬맹이들이 조잘거리는 소리다.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그래도 출처를 모르는 물로 길목에서 물총 싸움은 하지 말라고 타이르고 싶은 20대 중반 여자사람의 마음. 그런데 여기 있는 사슴들 참 예쁘다. 예쁘다는 형용사는 얘들한테 쓰라고 만들어진 것 같다. 나와 같이 예쁨에 취한 듯해 보이는 아저씨와 그렇게 한 참 동안 멍하니 사슴을 관찰하고 각자 셔터를 눌러댔다. 사슴이 귀찮은지 떨어져 앉아버리더라. 끝까지 관심을 끌어보겠다며 그렇게 사슴 앞에서 잰 걸음으로 왔다 갔다 하기를 반복했다. 아련한 표정이 잡히는 순간 다음을 기약하며 찰칵.

애들이 조잘거리는 소리를 따라가니 작은 동물들 우리가 나온다. 의외로 사나운 작은 동물들. 철망이 둘러쌓인 우리에 토끼와 기니피그가 함께 산다. 기니피그와 토끼. 내가 초등학생 때 수요일 혹은 목요일 하교 길이면 학교 앞에서 만날 수 있었던 친구들이다. 한 때 부모님을 졸라 청계천에서 토끼 두 마리를 사와 키운 적이 있다. 토끼에 대한 지식도 없이 단순한 귀여움으로 저질렀던 만행을 다 커서 반성했다. 작은 목숨들을 뒷 산에 뭍는 그 때도 실은 잠에 덜 깬 상태였음을 고백한다. 키우지도 못할 고양이와 강아지에 대한 집사 일기를 정독하고, 관련 웹툰을 부러 찾아보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무책임했던 어린시절이었다. '당근 있어요'란 만화를 즐겨보다 토끼에 대한 환상이 생겼고, 그 환상을 이루었다는 기쁨. 그게 다였던 것 같다. 어릴적에는.

자전거를 타고 등장하자 "뽀잉뽀잉" 울며 코를 들이밀던 기니피그들. 왜이렇게 반겨주나 의아했는데, 관찰하다보니 사육사분이 바퀴달린 4륜차를 타고 등장하시더라. 바퀴달린 것을 보면 반겨주는 멍청한듯 똑똑한 아이들. 기니피그는 사실 어릴적에도 별 감흥이 없었는데, 뽀잉뽀잉 우는 소리가 굉장히 귀엽다. 실제 소리가 아닌 것 같이 만화같이 우는 기니피그. "뽀잉 뽀잉"

피터레빗들의 여유로움을 또 넋을 놓고 바라보다 벌써 2시가 넘은 것을 보고 서둘러 핸들을 돌렸다. 혹시라도 시간을 맞춰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안될 거라는 것을 알지만, 시간을 맞춰보려는 이 마음이 엄마한테 사랑으로 다가갈 것을 알기에. (나는 대놓고 표현을 했다. 물론 시간에 맞춰 가지 못했지만.) 이번 라이딩에서 가장 후회한 것은 돈을 한 푼도 가져오지 않은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긴 여행에 따가운 팔보다 괴로운 것은 타는 듯한 갈증과 허기였다. 심심하면 나오는 매점들에 더욱 괴롭더라. 차라리 빨리 가버리겠어 하는 마음으로 신나게 밟다가 지도를 보니, 아뿔싸. 중계역에 다다른 것이다. 어쩐지 풍경이 시골에 온 기분이더라니… 다시 돌아가야한다고 생각하니 힘이 쭉 빠져서는 한 발도 내 딛을 수 가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럴 땐 그냥 퍼져 쉬는 게 답이 아닐까. 한동안 그렇게 벤치에 누워 하늘을 쳐다봤다. 고가에 가려진 하늘이었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인 느낌. 끝까지 가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김종욱 찾기의 대사가 생각났다. 꼬리라도 잡고 싶다는 말은 사실 꼬리를 잡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이 아니겠냐는 신형철씨의 말도. 

 

 

3. 다시 시작해야지

 

다시 시작해야지. 

그리고 절대로 꼬리는 잡지 않을거다.

 

ⓒ 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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